올해 가장 기대했던 영화 콘택트를 보았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을린 사랑으로 장편 메이저 영화에 데뷔한 이후로 프리즈너스와 애너미, 시카리오까지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콘택트(Arrival)은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무한한 확장성을 증명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른 작품 리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http://ulgoonpost.tistory.com/46)



지구에 12개의 우주선이 도착(Arrival)하고 언어학자인 에이미 아담스와 이론 물리학자인 제레미 레너가 외계인과 접촉(콘택트)하는 영화입니다.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The story of your life)>을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우주전쟁, 디스트릭트9을 비롯해 맨인블랙... 까지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는 마치 '나 여기에 돈 얼마썼으니 즐겨!'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이 영화는 시작 30여분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표정과 언어를 통해 그들을 묘사하고 소통합니다. 

인간과 외계인 모두 어느정도 학습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헵타포드란 존재는 세발낙지...스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척추동물스런 모습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세상을 구하는 것은 미국인 과학자, 군인 혹은 토니 스타크 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미국인 언어학자가 지구를 구합니다. 이론 물리학자가 있긴 하지만, 조연 전문 제레미 레너는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능력을 활용해 에이미 아담스를 돕습니다. 

언어가 다른 종 혹은 다른 고등생명체를 만났을 때, 서로가 학습을 통해 연결고리를 찾고 소통을 시작하게 됩니다. 먼저 그들의 소통방법을 이해하고,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소통을 시작하며, 서로의 언어를 학습하면서 그 존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이론은 사피어-워프 가설입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체계에 따라 행동과 사고방식이 변화한다는 것인데, blue라는 단어에 비해 한국어는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파랗다 푸르죽죽하다 등등 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색채를 비교적 자세하게 보는 서양과 달리 흔히 오방색이라 불리는 검정, 노랑, 하양, 초록, 파랑 다섯가지 색 밖에 없다는 점에서 blue의 주변 색들을 파란색의 범주에 넣게 됩니다.

즉 세계를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언어에 빗대어 바라본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언어학의 슈퍼스타 노엄 촘스키에 의해 많은 반박을 받았지만,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 또한 많은 지적을 받고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셸 공드리와 노엄 촘스키의 <Is the man who is tall happy?> 라는 작품에서 이 이론을 재미있는 일러스트와 함께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곧 시간나는대로 한 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콘택트는 바로 이 사피어-워프 가설을 통해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한 에이미 아담스가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고, 주인공의 역할을 시작합니다.


외계인과 인간, 국가와 국가, 민간인과 군인, 남자와 여자 등 다양한 종류의 소통이 마구마구 등장합니다. 콘택트는 이 영화를 통해 사물을 정확히 인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하여 소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헵타포드의 언어가 시작점도 끝점도 없는 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의 언어는 시제가 없으며, 12개의 각 우주선의 메시지를 모두 모아야 해석 가능한 언어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내려놓은 카나리아 또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나리아는 산소포화도에 민감해 탄광에서 항상 함께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에이미 아담스가 보호복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하면서 카나리아는 헵타포드와의 소통에 등장하지 않고, 아이의 그림에 등장하게 됩니다. 카나리아는 위험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카나리아가 사라지는 순간 헵타포드와의 소통에서 두려움과 위험성 또한 사라짐을 의미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이의 그림속 카나리아로 치환됩니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매우 어려운 이론과 플롯을 음향과 촬영, 복선을 통해 매우 쉽게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프리즈너스의 구도, 에너미의 복선, 시카리오의 음향효과는 제가 본 중 각각 최고 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그 세가지를 현란하게 활용하면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쉽게 전달합니다. 대학교 때 정말 어려운 이론을 적절한 비유와 슬라이드를 통해 알기쉽게 전달해주시던 교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딥러닝, 머신러닝이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과학자들은 다시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세상을 작동하게 만드는 건 과학이나 총이 아닌 언어와 철학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다시 철학의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SF 장르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내는 드니 빌뇌브의 끝은 어디까지인지가 기대됩니다.



시나리오 ★★★★☆ 

연출      ★★★★★

연기      ★★★★★


종합      ★★★★☆

SF까지 완벽히 소화한 드니 빌뇌브의 무한한 확장성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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