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브릿지를 보고 왔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 배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미 이프 유 캔, 터미널에 이은 네번째 만남입니다.
이미 많은 만남이 있었던 만큼 배우와 감독의 케미는 매우 뛰어납니다. 톰 행크스는 완벽히 작품속에 녹아들며, 감독의 지시에 맞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독 또한 배우의 능력을 이해하고 배우가 자신의 장기를 보여 줄 수 있도록 디렉팅했습니다.
스파이브릿지의 스토리는 명확합니다. 보험 전문 변호사였던 짐은 미국의 정의를 위해 구 소련 스파이의 변호를 떠맡게 되고, 사형이 아닌 30년 형을 이끌어냅니다. 이후 미국의 비밀작전이 실패하면서 조종사 파워스가 억류됩니다.
변호사가 자신의 전공을 바꿔가며, 두 인질의 맞교환을 성사시키는 단순한 구조의 플롯은 한국의 어떤 영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변호인입니다. 세금 전문 변호사가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게되면서 자신의 신념의 변화를 느끼고, 무죄 입증에 최선을 다하는 송우석과 짐은 많은 점에서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씬 위주로 흘러가는 변호인과 달리, 스파이브릿지에서는 다리 위는 아니지만 소련 대사관 등 여러 곳을 움직이며 135분의 러닝타임이 지겹지 않도록 합니다.
첫 시퀀스에서 톰 행크스가 아닌 소련 스파이의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소련 스파이 아벨은 첫 시퀀스에서 자화상을 그리면서 그림 속의 '나'와 거울 속의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소련에 두고온 삶과 현재 자신의 처지를 놓고 갈등하는 것을 은유합니다. 하지만 소련을 그리워 할 뿐, 소련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파이 활동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보이며, 탈출을 기도하거나 적국에 혼란을 주는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그림활동을 계속합니다.
짐 또한 CIA와의 갈등을 통해 미국인을 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닌 개인신분으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한 구명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정부기관이 짐에게 변호를 맡기면서 미국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을 위했지만, 짐의 활약 덕에 사형을 면하게 되면서 아벨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지고 재판정의 모든 인원들은 분개합니다. 짐이 아벨의 변호과정에서 아벨에 대한 개인적인 연민과 미국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일반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삶과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짐의 모습은 코뮤니스트의 조력자로 몰렸다가 역사적인 협상을 이끌어낸 구국의 영웅으로 변하게 됩니다.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은 손찌검이나 욕지거리를 하지는 않지만, 사상검증을 하고 싶었을 냄비근성의 시민에서 영웅을 추앙하는 존경심과 이전에 자신이 행한 것들에 대한 멋쩍음으로 인해 적극적인 제스쳐를 취하지 않습니다. 언론에 대한 맹목적인 정보수용은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신문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짐이 주로 이용하는 열차가 이 영화에서도 메시지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통근열차는 언론과 시민들이 바라보는 여론을 드러내는 장이었지만, 목숨을 담보로 베를린을 건너는 열차는 동베를린의 참혹한 모습과 이데올로기를 오가는 상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벽을 건너 이데올로기를 탈출하려는 시민의 최후와 남의 집 담장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모습의 대비를 통해 페이트리엇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선전이 아닌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해석됩니다.
소련은 동전을 비문을 숨기는데 사용하고, 미국은 자살하기 위한 청산가리 통으로 사용하는 모습도 대비적으로 비춰주어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짐은 동전을 아내와 통화하는데 사용하기도 하며, 사람들은 영화 중간에 잔돈을 만지작거리거나 주머니의 동전소리를 삽입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동전이 누구에게는 전달수단이, 자살도구가, 통화수단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전에 비문을 보니 베를린의 표절논란이 생각나네요. 동전에 USB를 숨겼다는 이유로 표절에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처럼 그 시대의 동전은 널리 쓰이던 스파이용 도구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이것도 차일드 44 표절???? ㅋㅋㅋㅋㅋ)
135분의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터미널에서 톰 행크스가 보여준 긴 호흡의 연기를 스파이 브릿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중간중간 재미있는 장면들과 빠른 화면과 시간의 전환을 통해 환기시키고 관객을 다시 스크린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99.9%가 좌편향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바로잡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바라본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Would it help?"
이상 스파이 브릿지였습니다.
별점(5.0 만점) - ★★★★★
철수와 영희만큼 완벽한 조합. 스필버그만의 휴머니즘과 템포로 펜타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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