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중간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그놈이다를 보고 왔습니다. 호러와 스릴러를 조합한 한국형 스릴러라고 감독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나선 주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실화에 기반해 제작된 시나리오라고 홍보하면서 모티브가 된 사건 하나만을 자세하게 이야기 할 뿐 시나리오의 전체적인 얼개는 허술한 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하이브리드 스릴러에 대한 언급을 해보겠습니다. 살인범이 등장하고 고어한 액션이 등장하는 스릴러와 귀신이 나와 초현실적인 무언가를 해내는 호러는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살인범과 귀신이라는 객체만을 가져와 영화를 만드는 바람에 설렁탕에 비빔밥을 말아버린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로 먹으면 맛있는 음식이지만, 두 개가 섞이면서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고 말았던 거죠.

  살인범이 나오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추격자입니다. 하정우의 사이코패틱한 연기와 피튀기는 격투, 잔인한 흉터 등의 비주얼 속에는 수퍼아줌마 혹은 살인범을 쫓는 4885성애자 김윤석 등 인물의 행동,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기 최악의 행동을 하는 어리석음 등이 곁들여져 영화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스릴러의 살인범이라는 캐릭터만 가져와 이야기를 만드는 바람에 유해진의 범행 동기 혹은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그림 등이 그려지지 않는 거죠.

  호러의 측면에서는 여고괴담 혹은 장화홍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엘라스틴 한 긴 머릿결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서움이 있어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수지라는 여자아이와 죽음과 귀신을 볼 수 있는 시은이라는 캐릭터만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설렁탕에 비빔밥을 섞어놓은 그 비주얼만으로도 그 맛이 상상이 되고, 차마 숟가락을 담글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퓨전요리를 하라고 했더니 잡탕밥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랄까요. 반전이 없고 기대할 수 도 없게 만든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입니다.


  유해진의 연기력과 스크린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흡입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올 해 유해진이 보여준 극비수사와 소수의견, 베테랑 에서의 모습은 이전까지 유해진 하면 생각나는 감칠맛 나는 감초연기보다 더 정극에 가까워진 악역과 진지한 역할까지 넘나드는 완벽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정말 퓨전요리인 것입니다. 살짝살짝 간을 보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마지막에 감정을 터트리는 그만의 연기호흡은 모든 영화를 빛나게 하는 한국영화의 큰 자산입니다.

  하지만 민약국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최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자를 증오하게 된 계기도 빈약하고, 부모를 살해한 뒤 몇십년 뒤에야 그 잔인함이 발현된건 왜이며, 틱장애는 왜 어깨걸이샷에서만 나오는지 등등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원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경상도 사투리를 자주 듣는 저에게 그가 하는 사투리란 그저 서울에서만 살아온 대학 신입생이 경상도에서 온 친구의 말을 따라하는 듯한 어눌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감정처리나 연기는 괜찮았습니다.

  그놈이다에서 형사의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아니 없습니다. 수사를 하는 척 하다가 도박을 눈감아주고 주원을 때리다가 살인범에게 맞아죽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본 더 폰 보다 경찰이 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차라리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한 시골마을이라고 컨셉을 잡는게 어땠을까 싶을정도로 지나치게 방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 하나하나가 영화에 현실감을 떨어트리고 영화로 몰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장르적 측면 다음으로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액션이었습니다.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나오지 않은 바람에 무술감독을 따로 쓰신건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이란 그저 스피어(프로레슬러 엣지의 피니시무브)입니다. 형사와 약국씨 모두 스피어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죽이려합니다. 물론 프로레슬링에서는 안아픈 기술들도 피니시무브라고 이름붙이면 카운팅하는 동안 일어나지 못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했다고 말한 영화에서 피니시무브로 상대를 죽이려 하면 안되죠. 한국영화의 액션은 아저씨를 필두로 생전 처음보는 무술을 활용하기도 하고, 베를린의 총을 쏘지 않는 권총액션, 베테랑의 합을 맞춘 액션 까지 다양한 기술을 갖추고 있는데 하필 가져다 쓴게 WWE 식 피니시무브라니 안타깝습니다. 내가 저걸 맞고 아플 것 같다는 느낌을 전해줘야 호러가 됐든 스릴러가 됐든 실감이 날텐데 프로레슬링을 가져다 쓰셨으니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딱 한 번 '아 내가 극장에 왔구나'라고 생각한건 바로 걸음소리를 서라운드로 들을 때 였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멀티채널 사운드를 실감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만큼 사운드 또한 평면적이고 화면과 맞지 않습니다.


  감독님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적인 스릴러를 원하는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여기서 제가 가장 싫어하는 어휘가 한 구절 등장합니다. 바로 '한국적'입니다.


  모든 상품에 한국적이 붙는 순간 그 상품은 모두 변질하고 맙니다. 이건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문화라는 단어에 한국적이 붙으면 배나온 부장님의 잔소리가 생각나고, 야근을 미친듯이 하며, 견디셔를 먹어야 할 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그런 것들이 생각나는 건 저뿐인가요? 이러한 선입견들이 모인 집합체가 한국적이라는 접두사가 되어버린 슬픈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한국적 스릴러가 그놈이다 라면 저의 선입견은 정설로 굳어져버릴 수 있는 아쉬운 결과가 도출될 수 있겠습니다.


  아마 핼러윈 시즌을 앞두고 스릴러 영화들이 이 시기에 맞춰 개봉하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 핼러윈이란 단지 클럽에서 호박 뒤집어쓰고 춤추는 것이 다인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맞지 않은 개봉시기 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여름에 개봉해서 암살이랑 경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별점(5.0 만점) - ★☆

  설렁탕도 맛있고, 비빔밥도 맛있지만 한꺼번에 먹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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