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왔습니다.

진학을 선택한 한 여학생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처음에 버린 선택으로 돌아갔지만, 남자를 만나고 본인주택의 재개발 확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펼쳐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입니다.


  포스터에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글귀 위에 생계밀착형 코믹잔혹극이라고 쓰여있지만 생계밀착과 잔혹은 있지만 코믹은 없는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신문을 던지는 장면이나 중요한 것을 집에와서야 발견하는 장면 등은 피식거리게 했지만 메시지에 짓눌려 웃음기가 사라진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만한 부분은 곳곳에 있습니다.

먼저, 생계와 밀착한 소재를 활용해 동네에서 만날법한 마스크를 등장시켜 유명하지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스토리 전개 구조가 짧은 시간에 치밀하게 움직임으로써 관객이 지루할 수 있는 앵글을 참고 바라볼 수 있도록합니다.


  초반에 던져놓은 복선은 후반부에 연결된 것들과 매칭이 되면서 아~! 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되었습니다. 재개발문제에 대해 계장의 독단에 의해 두 집단에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고 이로 인한 수남의 복수는 어떤면에서는 이해가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큰 피해자는 수남의 집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라는 것을 알고나서는 씁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배역은 90분 동안 많은 생각을 해보고, 관객 자신에게 나는 어디에 위치해있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 가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엘리트를 선택했지만 그녀의 무지로 인해 세상이 변화해 가슴만 남게된, 그마저도 별것 아니게 된 수남(이정현)과 체격이나 생김새는 듬직하지만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수남의 남편, 상담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환자들을 내보내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신상담사, 마초이즘과 꼴....애국보수의 끝은 자신의 이익임을 잘 알고 있는 원사,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정신상담사에게 조종당하는 세탁소사장,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남을 수족부리듯 하는 계장 등 다양한 캐릭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캐릭터는 여기서 뭘 말하고 싶은걸까?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제가 눈여겨 본 부분은 원사를 연기한 명계남배우의 복장이었습니다. 팔각모와 태극기가 부착된 전투복을 입고 활동하는 그는 양쪽 팔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해병대 마크와 태극기, 옷깃에 붙어있는 정식 규격에 어긋난 약장은 그가 얼마나 맹목적인 복종과 권위의식이 가득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만드는데 2억밖에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스케일이 그리 큰 영화는 아니지만 왠만한 단편영화를 만드는데도 그보다 많은 돈이 들었을텐데 가성비는 가히 역대최강입니다.

  반대급부로 베테랑과 암살, 미션임파서블을 보고 그 스케일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단순하고도 소탈한 이 작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눈에 보이는군요...


  청년취업지원을 위해 아무런 상관없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정부와 사내유보금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연일 갈아치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야할 투자와 연구를 하지 않는 기업, 자신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곳을 연신 홍보해대는 언론, 가정에서는 이끌어나가야 할 가장이지만 기업에서는 쫓겨날 처지에 내몰린 기성세대, 스펙은 단군이래 최강이지만 취업할 곳이 없어 기성세대만 바라보며 모든것을 포기한 젊은층이 마석동에 투영한 블랙코미디 영화였습니다.



  별점(5.0 만점) - ★★★

  실소와 냉소짓게 하는 블랙코미디, 정곡을 찌르는 각본에 이정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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